shame


문제는 채용비리가 아니다

오늘 내가 일하는 단체의 메시지방에 포스터 하나가 올라왔다. 한 장의 웹자보였다. KT, 강원랜드, 중기공 등에 채용청탁을 한 것으로 알려진 정치인들과 청년수당 정책에 반대하는 보수야당 원내대표를 풍자한 그림이었는데, 몇몇 동료 활동가들은 재미있으면서도 분노가 치민다는 답글을 달았다. 적시에 게재돼 많은 이들의 공감과 재미를 불러일으킬만한 한 장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번 웹자보뿐만 아니라 그 이전의 여러 채용비리 관련 뉴스를 보면서도 별다른 분노의 감정이 들지 않았다. 다들 부당한 일이라며 성토했고, 나 역시 권력자들이 자신의 권한을 남용해 괜찮은 일자리를 자기 영역 안에 있는 사람에게 나눠준 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동의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내 마음을 뒤흔들고 화가 나게 할 정도의 문제로 다가오지는 않았다. 다들 잇따른 채용비리가 문제라고 하는데, 그 사실을 취재한 뉴스를 보고도 분노감이 들지 않는 난 이상한 놈인가? 


채용비리가 발생한 기업에 채용청탁이 발생하는 것 것은 이들이 (업무의 성격이나 분위기, 가치 등이 아니라 보수와 안정성의 측면에서) 매력적인 직장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이 매력적인 직장일 수 있었던 이유는 이들이 사회적 자원의 상당부분을 과점하고 있어 조직의 내부구성원들에게 더 많은 과일을 나눠주고도 이윤을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직장을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이러한 직장이 고용할 수 있는 피고용인 수는 한정되어 있다. 결국 사람들은 좁은 문을 두고 취업경쟁을 벌인다. 사회는 그것을 방조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이를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이러한 전제에서 사람들은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에는 규칙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진 자원을 총동원해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어하는데, 이중 소수는 게임의 룰 자체를 패스할 수 있는 사회적 자원을 가지고 있어 룰을 지키지 않고도 쉽게 문을 통과한다. 이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그 좁은 문에 들어가기 위한 룰이 정해져있는데, 그 룰을 어기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더 넓게 생각해보자. 애초에 문제는 그 좁은 문을 통과해야만 기본적인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부의 배분이 왜곡되어 있고 편중되어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왜곡되고 편중된 부에 접근하기 위한 게임의 룰이 정립되어야 한다고만 말한다. 문제는 불평등인데, 자꾸 불공정에 대해서만 목소리 높여 이야기한다. 만약 청탁 행위가 원천 금지되고 오직 공개 경쟁 채용만 이루어진다고 생각해보자. 그것만으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가 이루어지나? 애초에 그 공정한 경쟁에서조차 이길 수 있는 유리한 환경에 놓여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조건 차이가 존재한다는 현실을 바꾸지 못한다면, 그러한 공정사회는 내게 필요 없다. 이미 짜여진 틀 안에서 작동하는 (불평등을 은폐하는) 규칙에만 얽매이면, 우리는 그 속에서 영원한 불안과 자기 보위만을 생각하는 노예 같은 삶 속에 갇힐 수밖에 없다. 따라서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게임의 판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이는 우선 공정사회가 되고나서야 비로소 그다음 단계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로 접근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그래 좋다. 기득권층에 주어지는 반칙할 특권을 제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전반의 사회경제 체제와 그에 대한 인식틀, 패러다임의 고민이 없으면 그 어떤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목소리도 허무하다. 사회가 계속 불평등한 이상 불공정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래서 공정사회만을 부르짖는 주장은 현 제도의 정상기능 범위에 매몰된, 지극히 보수적 선택지만을 보겠다는 시각에 불과하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