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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란 –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기회로 바라봐야

예멘 난민을 둘러싼 논란 더 좋은 사회를 위한 기회로 바라봐야

 

어느날 갑자기 그동안 한국에게는 멀고 낯설기만 했던 예멘이라는 나라에서  500명이 넘는 사람이 찾아와 난민 지위가 인정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후티 반군과 하디 정부, 그 배후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대립, 알카에다와 이를 소탕하려는 미국 등 머리가 아플 정도로 어지러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간의 갈등과 대립에 따라 서로를 죽고 죽이는 그 혼돈의 땅에서 벗어나고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거쳐 무사증 입국이 허용된 대한민국의 섬, 제주도에까지 찾아온 것이다. 한국 정부는 갑작스런 난민 유입에 당황한 나머지 이들 500여 명에 대해 출도금지 조치를 내렸고, 난민들은 제주도에 발 묶이게 되었다.

 

인심은 곳간에서 난다고 하던가. 신자유주의 광풍 이후 무한 경쟁과 불안정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타인을 받아들일만큼 주머니 사정도, 마음 씀씀이도 넉넉지 못하다. 타인에게 관대함을 베풀만한 베포와 자신감과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우리사회는 행여 낯선 이에게 무엇인가를 빼앗기지는 않을까, 그들이 우리를 해치지는 않을까하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 한편에서는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기 위해 들어온 가짜 난민이라는 주장에서부터 그들이 이슬람 특유의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성향으로 말미암아 몇몇이 테러리스트 전사가 되어 우리의 안전을 위협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다. 이번 예멘 난민의 다수가 남성이고, 무슬림들의 남성우월주의 문화로 말미암아 이들이 우리나라 여성의 안전에 위협이 될 것이라는 걱정도 여기저기에서 들려온다. 확실히 많은 사람들이 난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으며, 무슬림 남성에 대한 공포와 편견어린 시선이 마치 객관적인 진실인양 호도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한 여론조사기관은 제주 난민 수용 찬반을 묻는 전국 여론조사에서 반대’49%, ‘찬성’39%로 난민 수용반대 의견이 다수를 차지했음을 강조했다.(역설적이게도 이 전국 단위여론조사에는 정작 예맨 난민을 직접 보고 접하는 이들인 제주도민들 의견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그 반대 측에서는 난민들에게도 인간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한국 정부와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난민을 수용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들은 정부가 예멘 난민의 추가 유입을 막기 위해 무사증 입국이 제한 국가 목록에 예멘을 포함시켜 예멘 난민신청자의 탈출 통로를 봉쇄했으며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도 져버렸다고 비난했다. 정부가 어렵게 입국한 예멘인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제한하는 출도금지 조치를 내려 제주도에 고립시킨 것 역시 난민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이 난민 협약에 조인했음에도 난민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인력과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 못한 것도, 난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공포심을 조장하는 언론의 태도 역시 인권을 옹호하는 자들에게는 주요 비판 대상이다. 극우적인 성격이 강한 한국 개신교 사회의 이슬람 혐오증과 함께 다름 인정이 되지 않는 한국사회의 배타성, 인종주의적 편견 역시 비판의 지점이 되곤 한다. 난민을 받아들여야하는 당위는 그것이 옳은 일이기 때문이며, 한국 정부 역시 그러한 뜻에 동참하기로 국제사회에 약속했기에 이를 준수할 의무가 있다는 주장도 들려온다.

 

이 두 개의 서로 충돌하는 주장-‘국내 사회질서의 안정과 내국인 안전보장을 위해 난민 유입은 불가’ vs ‘보편적인 인권의 추구와 난민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의 당위성은 각자 자신이 더 옳다고 주장하며 서로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을 긋고 계속해서 대립한다. 그런데, 대중의 불안을 조장하며 권력을 유지하는 정부기관과 언론, 그리고 주요 종교는 난민 문제를 자기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이들이 대중을 후자보다는 전자 쪽의 생각을 갖도록 이끌고 감에 따라 그 근거 없는 공포심은 날로 증폭되고 있다. 난민에 대해 보다 호의적이며, 개방되고 우애가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입장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려면 반드시 정부, 언론, 종교 권력에 대항해 대중·시민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더 풍부한 이야기와 설득력 있는 주장의 근거들을 제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앞서 말한 (주로 육지인들의) 두 평행선이 담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마음을 움직이게 만드는 단초가 될 수 있다. 몇몇 언론이 소개한 바에 따르면 상당수의 제주도민이 육지인의 우려와는 달리 예멘 난민들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그들과 함께 지낼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떤 이들은 후원과 자원봉사를 통해 예멘 난민들에게 생필품을 나누어주기도 하고, 일부는 거처를 마련해주어 함께 지내기도 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멘인들 역시 그냥 농담 좋아하고, 상대방에게 예의바른 평범한 사람이며, “이슬람 문화 특성상 하루 다섯 번 기도하고 할랄푸드를 먹는 점을 빼면 한국 사람과 다를 게 없다는 것을 느끼고 이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한다. 일자리와 먹을거리가 없는 예멘 난민들이 일시적으로 제주도내 일손이 부족한 곳에 연결되어 일을 하는 모습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그래도 역시 산업이 발전하지 않았으며 그 경제·사회 공동체가 그리 크지 않은 제주도에 적지 않은 수의 예멘 난민들이 발 묶여있는 한, 이들을 수용해야하는 제주도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예멘인의 본성은 우리와는 사뭇 달라 서로 맞지 아니하여 발생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한 섬에 난민들을 가두어버리고, 그 섬의 주민들로 하여금 난민 수용의 책임을 전가하는, 그러면서도 난민을 아직 접하지 않은 시민들의 공포심을 방관하면서 이를 통해 현 상황을 유지하려는 국가 권력이 그에 대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내가 의아해하는 것은 난민 수용에 대한 호의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 또 다른 차원에서 제기할 수 있는 부분, 즉 가능한 한 난민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사회에 어떠한 긍정적인 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왜 그리 제시되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해서이다. 사실 당위성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당장 일상의 삶이 불안하고, 고통스러운 우리 시민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따라서 난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우리 사회를 보다 개방적인 곳으로 만드는 것이 우리 사회의 발전과 우리의 삶의 질 향상에 어떠한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인지 전망하고, 그 청사진을 제시해야한다. 올바른 이야기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언제나 할 수 있지만, 향후 전망과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중요하다. 그것은 비단 이번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이번 일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비록 난민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미 한국 사회는 다양한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로 변모하고 있으며 세계화 시대에 그 현상은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비정부 기구인 텐트 재단의 브리핑에 따르면 난민을 받아들이는데 투자한 1유로가 5년 이내에 2유로의 경제효과를 낳게 한다고말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호주 통계청 보고서를 인용해 인도적 차원에서 받아들인 난민은 일반 이민자들보다도 훨씬 강한 기업가적 성향을 보여줬다며, 난민을 받아들이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당장에 저출산으로 미래의 노동력 부족을 걱정하는 상황에서 이들은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새로운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막연히 가지고 있는 외부인에 대한 공포심, 일자리 상실 문제, 치안에 대한 우려는 사실 이주민의 유입 이전에 우리 사회의 개방성의 수준, 경제적 독점과 양극화, 평화와 신뢰가 담보되지 않은 사회 구성원들 간의 관계와 갈등이 만들어낸 우리 안의 괴물이지 바깥으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다. 난민 수용이 곧 사회적 병리현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되려, 난민들을 받아들임을 통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영향은 비단 당장의 경제적 효과에 국한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이들이 잘 정착하기만 한다면 한국사회를 더욱 다양하고 역동성이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 문화가 융합하면서 만들어내는 창의력은 향후 우리 사회의 자산이자 경쟁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일례로 실리콘밸리의 IT 혁신과 창의성은 이주민에 대한 개방성과 포용성이 기반으로 성장했음을 우리는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번 예맨 난민 유입을 계기로 난민 수용의 당위성을 넘어, 난민 수용이 우리 (시민)사회에 던져준 과제, 효과 등에 대해서까지 보다 포괄적으로 논쟁이 이루어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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