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


2016년 12월. 한국의 징병제에 대한 거칠고 개인적인 생각을 해 본다

2016년 12월


 나와 같은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홍 씨가 얼마 전 병역거부를 선언했다. 활동가로 일하기 전 인디뮤지션이었던 그가 함께 한지 얼마 되지 않아군 미필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그가 병역거부를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동안 나는 최대한 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싶지 않아 병역거부든 군대든 관련된 이야기를 거의 잘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홍 씨 본인 역시 군대를 갈 것이라고 에둘러 말했기에 별 생각 없이 지내다 보니 얼마 전 병역거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생각보다 놀랐던 것이 사실이다. 군에 구속되나 감옥에 구속되나 국가의 구속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기에 그에게 더 신중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했지만, 그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다.


홍 씨와 몇 차례 어울려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한국의 징병제, 그 국가동원의 체계에 대해 잊고 살았던 감수성이나 생각이 다시금 살아 오른다. 홍 씨가 병역거부를 하려는 사유에는 국가가 개인의 일신을 구속·통제하고, 기본권을 억압하는 그 제도 자체에 대해 문제의식이 담겨있고, 대체복무제 도입 역시 언급하고 있는데, 나 또한 군에 갈 나이가 되었을 당시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농담조로 조국이 나에게 해준 것이 뭐가 있는데?”라고 주변사람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국가라는 조직이 개인의 삶을 앗아가는 것이 나에게는 몹시 부당하다고 여겨졌다. 군대는 다양한 인간을 같은 틀에 넣어 찍어내는 공장과 같이 여겨졌고, 그건 여전히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당시 나는 군대나 감옥이나 국가가 나 개인의 일신을 구속하게 되는 것은 변함이 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고, 이 사실로 낙인을 찍히고 싶지 않았으며, 부모님을 설득할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게는 그 것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려운 결정을 내린 홍 씨에게 어떻게든 응원의 메시지를 외치고 싶은 마음이다.

 

한편, 어제는 역시 함께 일하고 있는 선배와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의도치 않은 토론을 하게 되었다. 나는 현재의 징병제는 문제가 있지만 모병제 또한 대안이 될 수는 없으며 대안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개인에게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이다. 모병제는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하게 되는 사람들만 가게 되어 결국 가장 사회적 약자들이 총을 들고 생명을 희생하러 가게 되는 제도이다. 사회불평등이 평화와 폭력의 문제에도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선배간사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개인들의 일정정도 희생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가가 유지되는데 필수적인 요소인 영토와 주권과 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일정정도의 제약을 통해 국가의 안전보장을 보장하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국가라는 체계를 넘어 생각을 할 필요가 있으며, 안전보장 역시 현재 총을 들고 싸움을 준비하는 개념으로만 국한되어 있는데, 그러다 보니 사회 다양한 곳에서 진짜 삶을 지키기 위한 안전보장은 이루어지지 않고 경시되는 것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월호가 아닐까?

여튼 이러저러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든 생각들을, 별다른 공부는 하지 않았지만 마냥 나의 상상력으로 거칠게 메모해봤다.

 

1. 한국의 징병제도의 문제.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징병제는 개인의 일신에 대한 국가의 전면적인 구속을 요구하고 있으며, 정훈교육, 내부의 분위기들을 보면 거의 전인적으로도 구속하고 있다. 사실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 일반 시민들의 인식이다. 군대를 회피할 능력이 있는 권력자, 엘리트는 의무를 다하지 않고, 힘없는 보통사람들만 군에 끌려가게 된다. 또한 여성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들을 의무로부터 배제시키고 있는데, 달리 말하면 이들을 사회를 구성하는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이로서 1등 국민과 2등 국민을 나누는 선이 그어지게 되며, 불평등한 조건, 부조리한 상황에서 부당하게 의무를 수행하게 된 일부 남성들은 자신들의 그에 따른 분노를 자신들을 그렇게 만든 사람이 아니라 더 약자이고 만만한 2등 국민에게 폭발하게 된다. 본질은 그렇게 흩뜨려진다.

한편, 이러한 조건 속에서 군 입대가 정해진다는 것은 그 동원의 대상이 대는 사람들에 어떠한 사명감도 주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이어진다. 제대로 된 사회적 합의에 의해 국가공동체를 지키자는 대의를 사회 구성원들은 진심으로 동의하지 않는데, 이미 불평등하고 부조리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에 합의되지 의무, 즉 진정한 의미에서 보편적인 의무는 아닌 족쇄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군은 사병들에게 어떠한 사명감과 자부심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박탈감과 불만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또한 현재의 징병제도는 대체 그 실체도 불분명한 국가라는 시스템을 위해 개인에게 충성을 강요하는데, 그렇게 해야만 하는 목적의식은 불분명해 보인다. 지난 역사의 흔적을 보아도 우리 사회는 피 흘려 일한 대다수의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 과실은 결국 권력과 부는 이에 참여하지 않은 소수 권력자에게만 주어졌다. 우리는 왜 우리는 충성해야하고 무엇 위해 충성해야하는지를 제대로 설명받지 못했다.

한마디로 현재의 시스템은 존재의 이유는 불분명한데,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면서도, 소수 권력자에게는 굉장히 유리하게 작용하는 측면이 크다는 말이다. 방산비리와 같은 군내에서 발생하는 비리와 사익추구, 이권 카르텔은 그 본질을 여지없이 보여주고 있으며, 그 반작용으로 군 조직이 진정 우리 공동체의 안전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인가에 대해 것인가에 대해 나는 굉장히 회의적으로 본다. 또한 군내 인권문제와 의문사 등은 이 체계가 사람을, 시민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2. 내가 정한 몇 가지 거친 원칙들.

위와 같은 이유로 지금의 군 제도는 지속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에 큰 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필요할 몇 가지 원칙들을 거칠게나마 정리해봤다.

 

우선 개인의 선택과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시민은 동원의 대상자가 아니라 권리의 주체이다. 의무 또한 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합의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배제가 없어야 한다. 한편으로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의 사정에 따라 각자의 방식대로 사회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 모두가 제각기 사회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때, 동등한 위치에서 권리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으며 상호간의 불신도 완화될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안보라는 개념을 현재의 국방이라는 협소한 의미에서 벗어나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행위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모든 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이들이 기여할 수 있는 안보가 되며, 공동체의 운명을 함께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안보에 기여하는 사람들은 그 일을 통해 자긍심과 효용성을 함께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지키는 대상이 나에게 보이고, 내게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에게 특정한 부역을 강제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일신의 구속은 최소화해야한다. 이미 말했듯이 시민 개개인은 권리의 주체이며 당연히 자신의 신체에 대한 자유, 주거, 사회적 권리를 가지는데, 그러한 권리를 지키기 위해 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시민 개개인으로 하여금 우리나라라는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가상의 대상을 위해 충성을 다하라고 시키는 것은 인간을 수단 그 이상으로 보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시민 개개인에게 그 일의 복무가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자신의 이웃을 위해 유익한 일임을 확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합의되고 모두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 개인이 납득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3. 모병제에 대해

나는 위의 원칙에 모병제는 철저히 반대된다고 생각한다. 모병제는 희생의 불평등을 전제로 한다. 과거 종교개혁이 있기 전 중세교회가 면죄부를 돈을 주고 팔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마도 가난하고, 못 배운 사람들이 군대에 갈 확률이 높다. 돈과 권력이 있는 이들은 오히려 모병제에 따라 공동체의 안전보장에 관련된 복무에서 면제될 길이 열린다. 마이클 무어의 옛 영화 볼링포콜럼바인에서는 그 적폐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었는데, 미국에서 가난한 이들, 특히 거리의 부랑자들이 돈 벌래?”라는 제안에 군에 입대했고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갔다. 그 동안 미 방산업체, 석유업체, 그리고 이들에게 투자한 월가는 엄청난 돈 방석에 앉았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은 과도한 것일까? 그리고 모병제 역시 사회적 약자를 배제하고 이들을 2등주민화하기는 마찬가지이다.

 

4. 간략한 제안(안보개념의 확대, 개인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의 징병제도, 군에 대한 사회의 통제강화)

우선 개인의 선택의 가능성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안보개념을 더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 사회 공동체의 삶을 안전하게 지키는 모든 일을 안보의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확대한다면,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참여하고 기여할 수 있는 길이 다양화되므로 그에 따라 개인의 자율성의 여지는 확대된다. 그렇게 된다면 집총을 거부하는 평화주의자들도 거침없이 대체복무를 선택해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안전보장에 기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서비스 직무, 타인이 위험에 빠졌을 때 신속하게 구호하는 일, 다른 시민의 위임을 받아 일상에서 간과되기 쉽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위험의 요소들을 점검하는 것과 관련된 일, 질서유지 등 등 다양한 일들이 고려될 수 있을 것이다.


물리적이고 일정 정도 폭력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안보도 당연히 중요하다. 나는 현 징병제도를 유지하되, 예비군처럼, 혹은 상근직 군인처럼 운영하고 복무자는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는 그 공간, 그 지역 내에서 복무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본다. 직접 자신의 고향을, 자신의 가족과 이웃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국가라는 불특정 대상이 아니라 보다 명확하고 개인에게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가치를 위해 지키게 하는 것이다. 중앙의 정예병, 특정한 임무를 띈 부대는 직업군인이 전담한다. 이는 국가라는 보다 큰 공동체를 염두해 두고 있고, 그에 대한 충성심을 나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 역할을 선택해 수행할 가능성이 높은 집단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의 운영은 시민의 손에 닿을 수 있어야 하고 잘못된 일이 발생할 경우 언제든지 개입해 개선될 수 있어야 한다. 사회구성원들이 합의한 원칙이 잘 반영하도록 감시와 견제가 가능해야한다. , 안전보장과 군 제도는 문민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한다. 그동안 군이 특정한 정치집단(주로 권력을 쥔 기득권 세력)을 위해 복무해왔으며, 그 가운데에서 군 수뇌부들이 그 콩고물을 먹어왔음은 누구나 알고 있다. 모두를 위한 군, 신뢰받고 존경받는 군이 되려면 적어도 군사기밀을 이유로 소수의 권력자와만 소통하고 대다수 국민에게는 명령하는 관계에서 탈피해야한다. 군의 인사, 돈의 사용은 투명해야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 내부운영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요소가 없는지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당연히 군 외부에서 정기적으로 감사하고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행정의 총괄 운영도 시민의 대표가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저런 메모를 미리 해두었는데, 생각보다 다채롭고 풍부하지는 않다. 내가 이 분야와 관련해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자료를 찾아보거나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추상적이고, 거칠게 쓰여지기만 한다. 그래도 한 번씩은 막연한 상상력을 펼칠 기회는 있어야 하며, 그 또한 보통의 인간으로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의 운명을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덧글

  • 흑범 2017/05/07 14:35 # 답글

    그러니까... 나한테 뭐 해준것도 없는 나라에서 희생, 애국만을 강요한다는게 웃깁니다.

    여태 효도 강조, 가족주의 세뇌 덕택에 그런게 잘 먹혀들었지만, 개인주의와 인권의식이 점점 확산되는 앞으로는 어림 택도 없는 소리가 되어갈 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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