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


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린다고 해서 물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한 사회의 질은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질이 결정한다. 모든 도덕성의 본질은 사람들이 타인의 인권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므로 이는 또한 한 사회의 윤리적 기준을 평가할 수 있는 척도이다. 이것이 복지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척도, 복지국가의 평가에 필요한 유일한 척도라고 나는 주장한다.”(바우만, 방황하는 개인들의 사회, p.132)

 

돌이켜보면 우리사회의 조건이 단 한 번도 불안하지 않거나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지 않은 적은 없었고, 오히려 우리의 삶은 갈수록 더 팍팍해져가고 있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이민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앞선 민주주의를 경험한 나라의 사례를 보며 생각하는 바에 참고하거나 혹은 감탄할지언정 그들 나라가 부럽다거나, 우리나라라는 공동체 자체를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한 번도 없다. 지난 몇 년간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사태들 속에서도 이게 나라냐는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왜냐하면 (나를 포함한) 우리가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한 사회의 질은 그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질이 결정한다.”고 한다. 이 말은 단순히 사회경제적, 제도적 조건에 따라 빈곤층의 삶이 얼마나 보장되는가에 대한 뜻이 아니다. 한 사회의 가장 취약한 계층의 삶의 질이라는 것은 그 사회의 윤리적, 도덕적 기준이 얼마나 수준 높은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삶을 얼마나 날 것으로 들여다보려 노력했고, 얼마나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으며, 사회적으로 그들과 공존하려는 논의에 얼마나 더 적극적이었냐고.

이 나라의 수준은 우리들이 만든 것이다. 그 누구도 탓할 수는 없다. 물론 그동안 엘리트 권력자들이 한 손에는 막강한 힘을 휘두르고 다른 손에는 지식과 언론을 통해 대중여론을 조작해왔다. 당신은 그럼에도 스스로 깨어있었다고 생각하며, 깨어있지 못한 자들이 결국은 권력에 조종당하거나 기생해 이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기 때문에 나의 책임은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생각이 매우 무책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잘난 당신이 가진 그러한 지식, 사고능력을 가지지 못한 무지렁이들에 대한 배제로 이어졌고, 그러한 사실이 결국에는 갈등과 반목으로 이어진 것이다. 불신은 곧 서로의 무책임함이 만든 것이다. 당신도 그에서 절대로 자유롭지 못하다.

 

알다시피 가장 취약한 계층은 스스로의 권익을 지킬 힘과 능력이 충분하지 못하다. 그 부족함은 사회적 연대에서 보충해주어야 한다. 공동의 이익을 갖지 않는 사람들과의 공존과 연대는 필연적으로 타인의 인권에 대해 책임지는 것, 즉 도덕성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그 사회의 수준은 그 사회 구성원들이 갖고 있는 도덕성의 평균에서 비롯하며, 사회의 수준이 이렇게 된 것에는 나에게도 책임이 일정정도 있는 것이다. 내가 무엇이 잘났다고 그러나? 내 형제, 내 친구, 내 이웃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나는 우리 공동체를 부끄러워할 자격도, 우리 공동체를 떠나 다른 공동체로 갈 자격도 없다. 현재의 공동체나 다른 공동체에서나 어차피 나는 똑같은 인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결국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가 바꾸어 가야한다침몰하는 배에서 뛰어내린다고 해서 물에 빠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덧글

  • 흑범 2017/05/07 09:25 # 답글

    글쎄올시다. 스스로 살아갈 능력이 안되는 자들을 무조건 보호하기보다는

    적당히 도태 낙오시키는 것도 또다른 누군가의 삶을 보호하는 길이자, 적절한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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