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me


그래, 너희들은 가수다.: 대중들의 욕망과 실망.

지난 일주일 동안 방송연예면에서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프로그램은 "나는 가수다"이었다. 결국에는 PD와 김건모가 모두 떠나면서 일단락 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보였던 대중들의 반응들이 흥미로웠다.

 

 하여간 경쟁프로그램이 문제다.  신자유주의적 감각이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내려있고, 이것이 대중들로 하여금 일종의 환상, 이데올로기의 일부로 기능한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기존의 경쟁프로그램은 하나의 공정한 룰을 통해 최선을 다한 사람이 정상에 오른다는 하나의 성공스토리를 보여주었다. 프로그램의 형식은 경쟁지향적인 현실에 사는 대중들의 심정을 브라운관 안에 재현함으로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세계의 부조리함과의 대비되는 공정한 룰이 프로그램 전반의 흐름을 결정하면서 대중들의 갈증을 해소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꿈의 실현이다. 평범한 사람이 정상에까지 오르는 성공신화는 그 화룡점정으로서 그 카타르시스, 환상에 마침표를 찍는다. 대중은 그러한 과정에 자신을 동일화시킨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은 "나는 가수다"에서 신자유주의의, 즉 경쟁과 탈락이라는 잔인한 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다소 다르게 생각한다. 방송프로그램에 대해 대중들이 반발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대중들의 욕망이나 환상을 깨어부술 때, 그래서 프로그램 속에서 적절히 통제된 수준으로 반영되는 현실세계의 모습들이, 그 적나라함을 보여줄 때 관객은 거부감을 갖는 것이다.
함께 담보되는 것은 공정성이다. 적어도 경쟁프로그램의 룰은 공정한 것으로 보임을 통해, 현실세계의 부조리 함에 대한 대리만족을 제공한다.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었다는 것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바로 그러한 기대가 훼손됨으로서 생기는 대중들의 짜증이었던 셈이다. 김건모가 출연가수들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 아니 가요계 전반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김건모의 재도전은 바로 그러한 그의 위상이 서바이벌에 영향을 미치면서 불공정한 결과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대중들은 이미 가진 자들이, 그것도 순수한 경쟁 그 외적이고 암묵적인 영향력으로 인해 특혜를 받거나 특권을 누리는 현상들을 현실세계에서 무수히 보아왔던 것이다. 그러한 짜증나는 일상을 브라운관에서 다시 보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오죽하겠는가.

 또 하나, 이 프로그램에는 사실, 신화는 없다. 왜냐하면 이 프로그램은 이미 어느정도 입지가 굳어진 기성가수들의 경연장이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탈락한 사람이 다시 기회를 얻기위해 또 다시 무수한 노력과 희생을 해야하는 가, 또 그 불투명한 미래가 그들에게 놓여지는가에 대한 공감은 그리 강하지 않다. 김건모가 떨어져도 그가 다시 바닥부터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어느 한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도 어떤 공정한 룰을 통해 탈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보여주는 카타르시스에 대한 기대, 즉 견고해보이는 지배계층의 위치와 결속이 균열되고 해체되는 전복에 대한 욕망이 대중들에게 더욱 강했던 것은 아닐까. 여기에 참여한 가수들의 실력과 함께 보여지는 높은 결속력은, 어느 순간에 이르러 그들이 어떤 강한 직능 집단처럼 보이게 만들기도 한다.(이 프로그램에서 윤도현이 대중성없는 "락"장르에 대해 자주 말하지만, 사실 락자체보다도 윤도현 밴드의 입지는 이미 메인스트림에 있고, 그가 유명인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건모에 대해 재도전의 기회가 부여되었던 것이 후배가수들의 적극적인 목소리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마치 그들의 세계는 공고하여 깨어져서는 안된다는 의식의 발현으로 읽혀지기도 하는 것이다. 김건모 탈락에 대한 이소라의 강한 반응이 대중들의 눈에는 그들의 성곽과도 같은 견고한 유대, 결속이 깨어지는 것에 대한 반발로 읽혀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문득 삼성전자의 이건희 회장이 물러나고 다시 복귀했었던 당시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관,재계 등 사회지배계급에 속한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은 목소리로 이 회장의 복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기분은 어땠는가. 이와비슷한 현실이, 아무리 꾸며진 것이라도 공정한 룰에 의해 작동되는 것으로 보이는 방송프로그램에서도 재현되다니... 일종의 비극인 것이다.

 현실세계에서의 냉소는 무관심으로 결론이 난다. 그것은 불가항력적인 것이라는 인식에 의한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다를 수도 있다. 한번 시작된 관객들의 냉소는 그 프로그램으로부터의 시선을 거두어들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지만, 방송이 시청자의 눈으로 먹고사는 이상, 그들의 행위에 변화는 가능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관심이 계속 유지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사족이 길었는데, 아무튼 중요한 것은 대중프로그램을 보는 대중의 시선은 그리 일면적이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대중문화가 제공하는 카타르시스와 함께, 대중문화가 주는 현실사회의 적나라한 모습들의 인식, 그리고 욕망과 기대와 실망이 교차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지 않는다. 다만 그러한 힘을 어떠한 방식으로 매체, 대중문화의 틀 바깥으로 끄집어낼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한 화두로 제기되어야 할 것이다.    

 내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었던 반발만큼만, 대중들이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지 대중매체에서의 마스터베이션만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덧글

  • seaman 2011/03/25 13:57 # 답글

    광우병 선동질에, 천암함이 자작이라고 개소리해대는 인간들

    세상에 정의가 있다면 척결당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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